한강에서의 르네상스
2010-2013
박정민
artist statement
“이제 우리의 한강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한강르네상스’라는 새 옷을 갈아입고서 편안하고 아름다운 내일을 향해 흐르고자 합니다. 한강르네상스가 완성할 한강의 새 모습을 기대하세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2007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한강르네상스는 진정한 자연성 회복을 통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실현할 것입니다.
우리의 한강은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야경은 한강이 지닌 장점 중 하나죠. 그래서 강 안팎을 아우르는 한강 다리와 아파트, 지구별 특성이 반영된 한강공원의 야경을 조화롭게 연출함으로써 한강의 장점을 극대화할 예정입니다. 한강은 우리 선조들의 풍류와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적 장소입니다. 그래서 한강의 모습 안에서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죠.”
– 서울특별시 한강 사업본부 홍보물 ‘한강 르네상스’에서
물론이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닮게 되어있다. 사진으로밖에 찾아볼 길 없는 과거 한강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밖에 남아있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지시하는 지표 index일 것인 만큼이나,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서울 한강의 모습은 그러한 우리가 거의 실시간으로 새겨 넣고 있는 흔적 trace일 것이다. 정식 명칭이 ‘한강교량 전망쉼터’인 다리 위의 구조물들은 모두 7개로, 2009년 7월부터 2010년 봄 사이에 만들어졌다. 한때 플로팅 아일랜드로도 불렸던 반포의 ‘세빛둥둥섬’은 2010년 6월 초에 진수가 완료되고도 정상운영은 마냥 오리무중이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연계되어 진행되었던 ‘경인 아라뱃길’은 개통이 완료되어 약간의 자전거와 보다 약간의 유람선이 지나다니고 있는 한편, ‘한강 예술섬’을 비롯한 여타의 사업은 하나둘 백지화되어갔다. 세류의 변화에 따라 향방을 달리해온 이 프로젝트가 언제 어떻게 또 물줄기를 바꿀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진들의 시의성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유지될지 역시, 찍을 때의 나도 실은 몰랐다. 지금도 야경 속의 세빛둥둥섬은 블랙홀같이 으스스하다.
article
포스트모더니즘이 철 지난 유행처럼 되고 나서야 한국은 후기 산업사회가 되었다. 과연 한국다운 전개다. 그 앞과 뒤 사이에 어떤 척도가 가로놓여있든, 거기에 환호하든 무관심하든 우리가 이미 도달해버렸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이는 까닭은, 자축이라도 하듯 양귀비처럼 피어난 이 도시의 황홀 때문일지도 모른다.
발터 벤야민의 80년 전 레퍼토리는 이곳에 더 이상 잘 들어맞지 않는다. 대략 50년쯤 시대를 앞서 나갔던 이 천재는 근현대의 도시를 어지럽고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판타스 마고리아(Phantasmagoria; 요술환등, 주마등)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주마등 안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실은 어지럽게 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조차 못한다. 이미 그 안에 꼼짝할 수 없이 포섭되어 있는 탓이다. 마치 지구에서 나고 자란 모든 생물이 자전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여기 우리는 판타스 마고리아의 구성요소, 그것으로부터 떠난 삶을 상상하기도 힘겨운 판타스 마고리안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진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변화시키거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비판이라도 해볼 수 있는가. 아니, 단지 응시할 수 있을 뿐이다. 사진은 한때 너무 많이 보여줌으로써 아무것도 못 보게 만드는 시대의 첨병이었으나, 이제는 영상에 밀리고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뒤처지는 고문관이 되었다. 이 구닥다리를 기꺼이 집어 들고, 우리는 찬찬히 들여다보는 능력의 회복을 의도한다. 우리가 지금 발 디딘 곳이 어디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있는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가만히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고 보면 사진만큼 응시하기 좋은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