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shoiri
2004
강홍구














artist statement
유토피아의 변방 -오쇠리, 소멸된 마을에서
들어가는 길
오쇠리,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1동에 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마을로 가는 길은 셋이 있다. 한 곳은 김포공항 옆을 거치고, 다른 한 길은 화곡동에서 부천시로 진입해서 샛말을 지나는 길이며, 남은 한 길은 부천시에 오는 길이다. 어느 길로 접근하건 오쇠리는 그 기이한 경관 때문에 금방 눈길이 간다.
오쇠리는 김포 공항 바로 옆,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소음이 대단한 곳이다. 1942년 일제하에서 군용 비행장으로 김포 공항이 생긴 이래 수 십 년 동안 끔찍한 소음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소음에 대한 항의와 문제 제기가 1978년부터 있었고, 그 결과 1987년 4월 10일 오쇠리는 항공기 소음피해 1종 지역으로 결정되었다. 그 뒤 서울지방항공청과 부천시가 협약하여 주민들의 이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오쇠리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원만한 협의가 되어 이주가 거의 이루어졌으나 사정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아직 거기 살고 있다. 물론 거주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동네에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이다.
오쇠리는 조선 영조 때에는 부평도호부에 속해 있었고, 1895년 부평군으로 인천부의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오정면의 오쇠리가 되었다. 1963년 부천군 오정면 오쇠리의 일부는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강서구에 속하는 오쇠동이 되었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이 옆에 공항이 생김으로 해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속의 오쇠리는 부천시 방향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비행기의 고도를 보면 항공기 소음이 어떤지 금방 짐작이 갈 것이다. 길을 중심으로 무너져가는 집들이 보인다. 그 옆 공터도 집이 있던 자리이다. 집이 비면 한 채씩 철거되어 공터가 되는 것이다. 공터 뒤편의 나무가 서있는 곳도 집이 있던 곳이다. 집이 사라진 자리는 무성한 잡초들과 서울지방항공청에서 세운 무단경작 금지 팻말이 서 있다. 이 모든 풍경들은 하나의 자연 부락 혹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마을이 어떻게 소멸되어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것인지를 씁쓸하게 보여준다.
내가 처음 오쇠리를 찾아간 것은 99년이었다.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우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내가 살던 고강본동도 항공기 소음이 만만치 않아서 익숙해지는데 한참 걸렸지만 오쇠리는 너무 소음이 심해 익숙해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은 인천공항으로 국제선이 옮겨가는 바람에 줄었지만 그 전에는 거의 일분에 석 대 꼴로 착륙하는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동네 전체는 순간적인 폭발력은 낮지만 지속적으로 터지는 무슨 특별한 폭탄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너진 집 앞에 쌓인 쓰레기, 문 닫은 가게. 덜렁거리며 뒤집힌 도로 표지판과 낡은 간판, 이곳저곳에 버려진 폐차, 떼로 모여 있는 중장비 등이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멀쩡한 것은 집이 허물어진 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 뿐이었다.
그 놀라운 인상 때문에 가지고 있던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동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 처럼 한 마을이 폐허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일종의 상징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댐의 건설로 사라져 간 수많은 수몰지구 마을, 신도시 개발에 따른 철거, 그린벨트의 해제와 아파트 단지의 난 개발, 대도시 산동네 철거와 재건축이 이루는 거대한 살풍경의 대표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오쇠리엘 들렀다. 어떻게 변했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동네를 돌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주민 한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약간 공격적인 말투로 물었다. 작가라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물은 이유를 얘기했다. 그 해 일 년 동안 마을에 거의 40차례 정도의 크고 작은 불이 났고 2003년 3 월에는 열 살도 안된 어린 4 남매가 불에 타 죽었다고 했다.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 장소가 오쇠리라는 것은 몰랐었다. 그리고 그 불은 낯선 사람이 사진을 찍어간 다음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섬뜩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불에 탄 집 사진을 이미 찍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구멍가게 할머니도 그 얘기를 계속 되풀이했다. 그 불뿐만 아니라 다른 불들도 분명히 누군가 지른 것이라고.
지금도 오쇠리를 집이 한 채 허물어지면 공터가 되고 그 공터에는 쓰레기가 버려지거나 중장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밭에는 파가 자라고 미나리 꽝엔 미나리가 푸르다. 주거 공간은 사라져 가는데도 농토는 여전히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 아이러니 속에 산업화 혹은 현대화의 결과로 소멸되어 가는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마을, 혹은 자연부락 공동체의 해체는 오쇠리만의 것이 아니다. 오쇠리나 수몰지구의 마을들처럼 개발, 건설이라는 이름의 현대화의 거센 물결에 직접 맞닥뜨리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농어촌, 시골 마을 들은 해체와 소멸, 좋게 말해서 재형성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들은 대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골 마을들은 대개 일방적 피해자다. 그 피해는 마을이라는 공간적 단위의 해체에서 공동체의 소멸, 궁극적으로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생산 단위의 궤멸에 이른다. 게다가 그러한 마을을 이루고 지탱해온 정신적 기반이 되는 유토피아적 이념 혹은 이상의 완전한 소멸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우리나라의 끔찍한 현대화 과정에서 자연부락 단위의 마을들은 천천히 해체되었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농어촌 자연부락의 해체는 현대화의 흐름 속에 구축된 천민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며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농어촌 마을들은 대개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과거의 새마을 운동이니, 취락 구조 개선 사업 따위를 비롯한 농어촌을 살리기 위한 여러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해체 또는 소멸의 도정에 있지 않은 마을은 거의 없다. 그 과정에서 시골 마을 들은 도시의 내부 식민지 기능을 수행하거나 기껏해야 투기의 대상, 아니면 터무니없는 낭만적 신화로 덧씌워진 추억의 장소로 기능할 뿐이다.
파밭 근처에서
오쇠리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폐허가 된 마을과 더불어 작물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논, 밭이다. 대파, 미나리, 상추, 배추 따위가 자라는 밭만 본다면 오쇠리는 여느 농촌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 농지들은 언젠가 공원 녹지 혹은 골프연습장으로 바뀔 것이다.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땅은 그 자체로는 그냥 땅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땅을 농지, 대지, 주거지 따위로 분류하고 용도를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터무니없는 횡포이다. 이 횡포는 생산 불가능한 자연인 땅의 가격을 매기고, 소유물로 취급하며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르페브르를 빌어 말하자면 이윤을 추구하려는 목적 때문에 땅은 구분, 구획 지어져 철저한 파편화가 이루어진다. 땅을 둘러싼 복잡한 제도와 규정, 법률이 쓰레기 더미처럼 땅을 뒤덮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지는 이러한 땅 가운데 도시의 상업지나 주거지와는 달리 자체의 생산성 때문에 가치를 가지는 경우에 속한다. 물론 농지의 가격은 땅의 생산성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자본주의 지가의 속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다. 그러나 가격이 싸다는 것, 위치 자본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농지의 중요성을 낮춰 보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농지는 근본적으로 곡물, 채소 등의 농작물의 생산을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공원이나 골프장으로 바뀐다는 것은 땅이 가진 본원적인 생산 능력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즉 농작물을 생산하는 공간을 여유, 놀이의 공간으로의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오쇠리의 경우에는 항공기 소음 때문에 주거 공간 따위로 전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달리 보면 오쇠리는 공간이 공항과 항공기 소음에 의해 생산성을 박탈당했음을 뜻하며, 곧 자본주의 이윤추구 경쟁에서 탈락했음을 말한다. 따라서 오쇠리의 녹지화, 공원화 계획이란 결국 녹지화를 통한 공공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농지나 택지로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음을 선언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도 농지의 생산성을 박탈하고, 나아가 다른 용도로의 전환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그린벨트 지역에서 가장 심각할 것이다. 서울과 그 위성 도시를 둘러싼 그린벨트의 문제들 가운데 오염물 처리 시설을 갖추지 않은 무허가 공장, 하수도 시설이 없는 음식점들, 축사 등의 환경오염 시설이 들어서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농지의 경우에도 외형만 비닐하우스이고 내부는 공장으로 쓰이는 곳이 흔하다. 게다가 농지를 구입한 후 그 자리에 폐기물을 묻거나, 토사를 쏟아부어 형질 변경을 꾀하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그런 경우 그린벨트는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공간이 된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강제로 막는 장소로서 그린벨트는 기형적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린벨트 존속의 문제 혹은 그린벨트를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나타난다. 사실 그린벨트는 그린벨트 내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린벨트는 원래 부족한 도시의 녹지 공간을 확보하고, 도시의 무차별적 성장과 연담화를 막고,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적 상황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도시민, 도시를 위한 공간인 것이다. 이는 곧 농촌 혹은 그린벨트 지역이 도시를 위한 식민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린벨트와 농촌은 도시민의 여가의 장소, 식량 공급지 등의 배후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쇠리의 공원으로의 전환 또한 같은 줄기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진 속의 오쇠리 파밭은 수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를 옮겨 심는 중이다. 파밭의 뒤 쪽에는 폐허가 돼가는 마을이 있다. 이 아이러니칼 한 경관은 땅, 혹은 대지의 생명력, 농민의 끈질김 따위의 문학적 수사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비자본주의적 공간과 활동들이 파괴되어 이미 주 변화된 땅에 내려진 사망 선고에 저항하는 일종의 상징이 된다.
세입자들의 완전한 이주가 끝나고 농지들이 사라지면 르페브르가 말하는 식의 역사적, 구체적 공간으로서의 오쇠리는 완전히 소멸된다. 그 소멸 위에 인위적인 녹지가 만들어지고 나면 오쇠리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완벽히 사라지고 남는 것은 희미한 기억과 같은 기록뿐일 것이다.
마을 회관에서
오쇠리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의 하나는 마을 회관이다. 오쇠리 마을 회관은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오쇠리의 농가 혹은 상가 주택과는 달리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층 건물인 마을 회관 일부는 무너졌고, 이층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튀어나와 있는 현관, 건물 엎 이층으로 가는 계단 때문에 마을에 있는 다른 건축물들과는 겉보기에도 명백히 다르며 그 위치 또한 그렇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건물 이층에 올라가면 마을 전체와 김포 공항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이른바 공간 구문론 Space Syntax 적 해석에 따르자면 위상도가 높아 마을의 다른 곳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공간 구문론에서 말하는 위상도 intergration는 복잡한 방식으로 계산되지만 대강 살펴보면 위상도의 높이는 하나의 단위 공간에서 전체 공간 조직에 포함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데 얼마만 한 공간을 거쳐야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공간을 거치는 단계가 적을수록 그 공간이 다른 공간에 비해 위상학적 중심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쇠리에서 위상도가 높은 또 다른 지역은 지금은 세입자 대책 위원회 본부로 쓰이고 있는 농협 건물과 삼거리 지역이다. 식당, 이발소, 잡화점, 전자 제품 가게들이 모여 있는 그곳은 서울, 부천으로 통하는 교차로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위상 중심핵 지역 가운데 마을 회관의 위상은 독특하다. 마을 회관은 마을 나름의 상업, 금융 중심의 오쇠 삼거리와는 달리 공동체의 상징이자 집합 장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로서의 자연 부락은 일종의 유토피아의 일상적 실천이다. 물론 그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본래의 의미와 일치하는 곳은 아니다. 유토피아, 곧 이상향이란 현실에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전통적 농경 사회에서 하나의 마을은 독립된 이상적 공동체이며 현실적인 유토피아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을 안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며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마을은 명백히 다른 곳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오쇠리의 해체는 바로 이러한 공간의 해체이며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비록 오쇠리 사람들의 이주가 가까운 부천시 오정구 작동에 이루어졌지만 그곳은 오쇠리와 같은 자연 부락이 아니라 계획된 도시의 일부이다. 때문에 오쇠리가 본래 가졌던 마을로서의 성격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이주 단지가 잃어버린 것은 특별한 장소성 Sence of place이다. 장소성이란 지리학에서 다른 곳과 구별되는 단위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마이클 이그나티에프에 따르자면 20세기 초까지 대다수 인간의 삶은 그들이 하루 동안에 걷거나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속박되었다. 사투리와 지역 정체성은 지역의 산물과 전통을 활용하여 독특한 스타일 낳음으로써, 더욱 뚜렷해지고 강화되었다. 사회적인 가치, 기술과 환경 간의 조화가 다른 요인들 보다 우세하였고, 근본, 장소의 정신, 어떤 곳에 귀속하고자 하는 언어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장소감, 장소성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강력하고 긍정적인 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근대화 이전의 세계의 모든 공간들은 나름의 특별한 장소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 주의적 양식, 모던 건축과 도시 설계가 득세한 이래로 이러한 장소성은 약화되고 사라져 버렸다. 예를 들면 서울의 경우 장소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른바 무장소성 Placelessness이 그것을 대신한다. 대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상점, 가로 풍경 등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단히 유사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이 유사한 경관들은 사실 다른 도시의 장소성을 훔쳐온 장소적 도용이라는 혐의가 짙다. 그러한 장소성의 사라진 자리를 무장소성과 지리적 인용, 장소의 표절이 대신한다.
오쇠리가 가지는 독특한 장소감은 공항과 소음에 의해 천천히 파괴되고 끝내는 궤멸되었다. 아마도 새로운 단지로 이주를 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공동체는 와해되었을 것이며 버려진 마을 회관은 그 상징이다. 공동체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는 오쇠리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에 친목 모임을 만든다. 물론 이러한 친목 모임은 오쇠리 출신만의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대안 없는 선택의 결과이다. 이른바 장소에 대한 사랑 혹은 애착인 장소애 Topophilia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사이버 교류의 장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이버 장소는 지리학적 장소감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잡초와 쓰레기 사이에서
오쇠리의 집들은 말 그대로 폐허다. 겉보기에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 사람들이 산다. 아직 갈 곳이 없는 세입자들이다. 오쇠리 지역 전체의 집주인들과 세입자들의 수는 1999년 부천시 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천 세대가 넘는다. 98년 286 세대의 집주인들에게는 오쇠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정구 작동 부지에 이주 단지가 만들어져 원만히 분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집주인들을 제외한 세입자 780세대 중 상당수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 입주했고, 여전히 남아 있는 세대는 약 120여 세대이다. 99년의 회의록은 2002년 무렵이면 세입자 대책이 해결될 것 같다는 전망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2004년 5월 세입자 대책 위원회 건물에 붙은 공고문에는 27일 열리는 임시총회를 알리고 있었다. 안건 사항으로 오쇠리의 문제점과 대안, 부천 시청과 주택공사, 항공청, 대책위의 4자 면담을 통해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오쇠리의 세입자 대책 문제는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오쇠리에 남은 세입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다.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표현대로 진짜 3-400만 원이 전 재산이어서 어디 가도 월세도 얻을 수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 때문에 오쇠리의 폐허가 된 집들은 변방의 주거지이여 그 열악한 조건들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오쇠리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아니라 지나치게 사실적인 영화 세트나 과거에서 현재로 갑자기 공간 이동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쇠리에는 쓰레기가 많다. 그 자체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 집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쓰레기들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버린 것이 아니다. 버려진 폐차, 냉장고, 액자 같은 덩치 큰 폐기물부터 청량음료 깡통까지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고 있을 때도 있다. 폐차의 경우 번호판을 떼낸 차를 버리면 누군가 엔진과 부속품을 가져가고, 다음엔 차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까 오쇠리는 도시에서 생산된 쓰레기들의 하치장이자 중간 경유지이기도 하다.
사진에 보이는 집과 그 앞의 쓰레기들도 마찬가지 경로를 거친 것들이다. 작년만 해도 쓰레기가 있던 자리는 멀쩡한 마당이었고 그 옆에 집 두어 채가 더 있었다. 일 년이 지나기 전에 집들은 사라지고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 이 쓰레기들은 재활용 쓰레기를 팔기 위해 일부러 모아 놓은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곳 말고도 오쇠리 도처에 쓰레기들은 많다.
도시에서 생산된 쓰레기들은 도시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만들어진 쓰레기들은 우리가 알다시피 도시 밖에 묻히거나 소각된다. 지금은 공원이 된 난지도도 쓰레기를 묻기 시작할 때는 도심의 외곽이었고, 현재의 김포 쓰레기 매립장도 마찬 가지다. 그러니까 도시 밖의 농촌, 혹은 시골은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한 편으로는 도시에 경제, 정치적인 착취를 당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린벨트 지역에 몰래 내다 버리는 쓰레기나 오쇠리 같은 마을의 쓰레기, 더 나아가 매립장의 쓰레기처럼 도시에서 생산되거나 도시인들을 위한 쓰레기의 처리장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도시 외곽의 농촌은 국가 내의 제 삼 세계이다. 서방 선진국 둘이 자국 내에서 처리 곤란한 쓰레기들을 몇 푼의 경제 보상과 함께 제 삼 세계로 유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핵 폐기물 매립을 둘러싼 오랜 논쟁, 투쟁도 마찬 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핵을 이용해서 생산된 전력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도시민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산된 핵 폐기물을 매립하거나 수용하려는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에서 보듯이 반드시 필요한 화장장을 짓자는 데도 자신들의 사소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배타적이고 투쟁적인 도시민들이 그런 발상을 허용할리가 없다.
인구가 희박하고, 지반이 안정되어 있으며, 경제적 보상에 동의하는 지역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핵 폐기물이 가진 위험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 과정과 목적 등이 착취적 구조의 일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단순한 님비 현상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핵 폐기물 매립 후보지로 자주 외딴섬이 거론되는 이유는 섬이야 말로 진정한 변방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쇠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용도 폐기된 땅이자 마을이다. 그 용도 폐기는 오쇠리 자체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거기에 건설된다는 녹지는 난지도가 그러하듯이 쓰레기를 덮어 버리는 녹색 포장술의 일종일 것이다.
마을을 나오며
착잡한 기분으로 오쇠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서울 쪽으로 나오면 김포 공항 앞에 야간 착륙을 위한 항공기 유도등이 줄지어 서있다. 착륙하는 항공기들이 광명, 안양천, 화곡동을 거쳐 공항에 내리는 노선을 그리며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이 평야 지대여서 논 밭과 나지막한 구릉만이 눈에 뜨인다. 김포공항이 왜 여기에 들어서게 되었는지를 단박에 알겠다.
김포 공항은 42년 일제 치하에 군용 비행장으로 개설 된 뒤, 57년 까지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되다 58년 국제공항이 되었다. 71년 여의도 공항이 폐쇄되면서 국내선 항공기도 김포를 이용하게 된다. 국제공항이 된 이후 거의 50년이 지났고, 오쇠리는 그동안 고사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언젠가 일본의 나리타 공항을 건설하면서 토지를 수용당한 농민들이 벌이는 투쟁을 담은 흑백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결국 농민들의 거센 투쟁에도 불구하고 나리타 공항은 건설 되었지만 김포 공항은 건설, 확장을 거치는 동안 주변의 마을과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다큐멘터리 따위도 남아 있지 않다. 신도시, 공항, 고속도로, 고속철 따위의 범국가적 건설 프로젝트 사업에 수용 되는 토지들은 늘 농지, 임야, 마을이 주를 이룬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 당연함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늘 도시민들이다. 그것도 주변의 토지에 자본을 투자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중산계급 이상이다. 이 뿌리 깊은 악순환은 최근의 신행정수도를 둘러싼 투기 논란에서도 이어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널리 보아 오쇠리도 천천히 진행되고 그 결과는 약간 달랐지만 결국은 그 범주에 속해 있다.
오쇠리를 나오며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이제 우리는 살만한 공간을 가질 수 없는가, 이윤과 투기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을 가진 제대로 된 공동체와 공간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르페브르 말대로 이제 모든 공간과 땅은 균질화, 파편화, 위계화되어 더 이상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제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리의 경우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결국은 투기적이고 폐쇄적인 신도시, 기껏해야 투자 목적과 어처구니없이 낭만적 생각에서 출발한 전원주택 단지, 상업적 목적의 펜션 따위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 더욱 우울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최근에 우연히 가보게 된 헤이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쇠리와 마찬 가지로 같은 경기도에 있는 헤이리는 오쇠리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 동시대,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은 곳이면서도 두 곳의 양상은 무척 다르다.
오쇠리가 소멸되어가는 마을임에 반해 헤이리는 생성중인 도시이다. 사실 그 규모로는 오쇠리 보다 작기 때문에 도시라기보다는 헤이리 아트 벨리라는 공식 이름처럼 마을에 가깝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에 속하는데 임진강, 통일동산, 곧 북한에 가깝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처로는 매력 있는 곳이 아니다. 오쇠리와 더불어 두 장소 모두 경기도에 위치한다는 것은 두 곳 모두 서울의 영향, 혹은 메가로폴리스로서의 서울의 위세를 보여준다.
헤이리의 태동은 95년부터였다고 헤이리 홈 페이지는 전한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헤이리는 건물들이 상당수 들어서서 마을의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계획에 따르면 몇 년 내에 헤이리 안의 모든 건축물이 완성될 것이라고 한다.
헤이리를 건설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원칙들은 헤이리 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결적 된 것인데 목적은 헤이리를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해보면, 자연이 살아 쉼 쉬는 생태 마을, 그린네트워크로 디자인된 마스터플랜,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하는 건축 전시실, 광장과 길과 울타리가 미술 작품으로 조성된 곳, 예술성 높은 교량을 위한 현상 설계 실시, 휴먼 스케일을 살린 스카이 라인, 자연 친화적 길, 건물, 가로등, 하천의 정비, 다리 등등이 그것이다.
이런 원칙들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은 멀쩡하게 남아있는 야산들이다. 대개 신도시를 만들게 되면 건축 면적을 넓히기 위해 밀어버리는 나지막한 야산들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헤이리라는 장소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헤이리는 거대한 건축 전시장이다. 길을 따라 걸으면 그대로 전시장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그중 몇 건축은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도 나갔으니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 대표 건축들이 모인 셈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엄격한 규정들을 지켜야 했다. 예를 들면 분양받은 면적의 절반은 녹지로 조성해야 하고, 담장과 대문을 만들 수 없으며, 용적률은 100%를 넘을 수 없다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거기에 보태어 건물은 시멘트나 목재 등의 재료의 물질적 성격을 적실히 드러내어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도록 제한했으며, 색채 역시 안팎이 같아야 했다. 그것도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에 색을 섞어 색을 내는 등의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엄격한 규정들 속에 지어진 건축들은 어떨까? 건축물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다. 아니 일반적인 아무런 원칙도 없이 지어진 건물들에 비하면 분명히 환경을 고려했고, 개성 있으면, 심미적이고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헤이리 안의 길을 따라 걸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기묘한 이질감이다. 분명히 잘 지었는데 주위 환경과 부딪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주위 환경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비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건물들이 들어선 사이 야생적인 잡초들이 무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차피 헤이리의 구상대로라면 잡초는 잔디나 기타 흔해 빠진 조경으로 대치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건축물들은 주위 환경과 조화되도록 잘 배려되어 있다. 예를 들면 헤이리 사무소로 쓰이는 건축물은 도로의 높이와 지붕의 높이가 같고 지붕이 일종의 광장이나 마당 역할을 하며 공간의 짜임새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거기를 떠나 길을 걸으며 보게 되는 건물들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감출 수가 없다. 다시 한번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70년대 우리나라 미술품 전시장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디선가 본 듯하고 모두 다 그럴 듯한데 땅과, 야산과, 시내와, 잡초와, 하늘과 달라붙어 있지 않은 것일까? 건물에 스며 있는 엘리티시즘 때문일까? 아니면 한 번도 이런 공간을 본 적이 없어서 일까? 어쨌든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뭔가 복합적인 어떤 이유가 거기에는 있다. 흔해 빠진 전원주택이나 카페 모양이 아닌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싶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헤이리는 장소성을 가진 도시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라 어디를 가든 똑같은 건물, 간판, 업종,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도저한 무장소성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이다. 모두 다 서울의 파편이자 부분과 같은 끔찍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명백한 장소성을 가진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 인위적 장소성, 특수함의 추구가 뭘 의미하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헤이리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시내와 잡초들이다. 시내 위에 놓은 다양한 다리들도 괜찮다. 사실 헤이리가 문화적 생산과 소비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일종의 배타성, 부르디외 식의 차별성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이 차별성이 지리학에서 말하는 폐쇄적 장소 형성 Place cocoons을 통해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다루게 되는 중독된 장소 감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문화적 집단거주지, 생산지를 만든다고 해서 질 높고 그럴듯한 문화적 생산물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헤이리는 탈산업주의의 시대에 새로운 문화 산업을 위한 생태 환경적 접근의 한 예이자 실험일 수 있다. 그 실험이 성공이 될지 아닐지는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헤이리는 소문난 만큼 관심받을 가치가 있다. 안에서 무엇을 생산하고 소비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고 친환경 생태 마을이자 민주적 공동체라는 개념과 그에 따른 실천이 설득력이 있다. 더 따지자면 친환경 생태라는 말이나 그런 행위 자체가 결과와 상관없이 흔해 빠졌고, 또 근래의 지배적인 유행인 웰빙이라는 말이 붙을 만한 마을에 가까우므로 그냥 그렇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파트 건설사들이 내세우는 광고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하나의 모델로 지켜볼만하다.
오쇠리를 나오다 뒤돌아 보면 공항과 마을이 함께 십 년 만의 무더위라는 뜨거운 햇볕 속에 아득히 흐려 보인다. 이런 거리에서는 둘 다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공항은 오쇠리를 집어삼킨 괴물이고 오쇠리는 그 희생자이다. 그러니까 괴물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가 늘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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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