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eonhi.com/korean/채승우-휴전선-the-military-demarcation-line-2010/
01. 강원도 양구 50 75 Archival Pigment Prin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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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우
휴전선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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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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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우
新반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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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전통'(원제 : 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저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생각을 빌어 우리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 홉스봄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전통은 영국 왕실의 의식이라던가, 스코틀랜드의 남성 치마들처럼 지금 진짜 전통이라고 믿어지는 것들이고, 우리의 재현행사는 보는 이들이 ‘재현이고 행사’ 임을 인식한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전통이 현재 시대에 무용한 것이기에 가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또 대중 미디어를 통해 불가변의 ‘전통’에 대한 믿음을 공유해간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홉스봄은 이런 전통들이 발명된 것이라고 하면서, 사회가 변하는 때에 전통을 만드는 작업이 왕성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형성되는 시기에 집중되었는데 국기, 국가, 영웅들이 이때 만들어진다. 국가와 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될수록 옛날에 뿌리를 두고 싶어 하고 이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다.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역사는 과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민족 정체성 역시 사람들이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재현 작용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형된다. 민족이 상상되는 방식은 민족이 표상되는 방식이며 이것은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어진다. ‘만들어진 전통’이 여기에 작동한다.<br>\n<br>\n우리 사회에서 민족과 전통이 이야기되는 데는 최근 세계화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세계화의 논의는, 민족국가의 위상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고유문화’에 대한 담론도 여기서 생겨난다. 논의들은 고유문화라는 개념이 세계화에 대한 반발로서 생겼을 뿐 아니라, 문화의 민족주의가 세계화의 추세에 동참하는 기초로 작동한다는 데까지 이른다. 햄버거와 콜라의 문화에 반발해 고유문화에 대한 요구가 생기지만 이는 더 이상 반발이 아니라 세계화와 함께 공생한다는 뜻이다.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의 매체 혁명이 ‘문화의 산업화’ 국면을 심화했고, 이로 인해 민족문화의 개념은 유용한 상품이 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홈페이지의 재현행사 소개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노력한다.’고 쓰여 있다. 관광이 세계화, 주변과 반주변의 문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임은 물론이다.<br>\n<br>\n4.<br>\n전통 재현행사에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재현행사’가 아닌 ‘전통’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사진가들에게는 차도 가에 늘어선 현대식 빌딩과 가로등, 도로 표지판 모두가 방해물이다. 옆 차선으로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행렬의 사이사이에는 행렬을 감독하는 연출자들이 섞여있다. 카메라들은 시점과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사진의 시점과 프레임은 보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화면 밖으로 밀어낸다. 그리하여 재현행사의 이미지는 사진과 방송, 대중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이미지는 앞에서 인용한 신문 기사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전통’을 그 안에서 본다. 대중 미디어가 전통 재현행사를 보는 방식은 우리가 전통을 대하는 태도이다.<br>\n<br>\n전통재현의 주최자들은 공통적으로, 과거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그것이 현재에서부터 다시 계승되는 전통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재현은 결국 ‘단절’을 기초로 성립한다. 그것이 ‘재현행사’로서 계속되는 한 단절의 속성을 떨쳐낼 수 없다. 그 모순된 상황이 전통 재현행사를 어색한 모습으로 만들고 있다. 대중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전통행사의 모습은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이다. 이는 실제 전통 재현행사의 모습과 차이를 갖는다. 그 차이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전통 재현행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진은 차이를 보여주는 매체이다. 그리하여, 사진은 세상의 의미의 겹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작업 ‘新반차도-전통과 재현의 작동원리’는 전통 재현행사가 일차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행사가 투영하는 의미의 겹을 바라보려 한다. 또한 재현행사의 재현뿐 아니라, 사진과 미디어가 작동하는 재현의 영역까지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로써 사진을 보는 이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지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n"}, :artist=>{:title=>"채승우, CHEA Seung-woo", :description=>""}}
新반차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