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eonhi.com/korean/안종우-편집적-부표-2023/
Andreas Gursky, Bauhaus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95 x 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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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우
편집적 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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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06 x 74cm"], :gallery=>{:title=>"편집적 부표, 2023", :description=>"artist statement<br>\n기억, 그리고 원시림<br>\n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br>\n<br>\n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던 당시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오후의 살굿빛 햇살이 들어오던 공항 풍경은 졸린 기억<br>\n으로 남아있고, 짐가방과 트롤리의 바퀴 소리는 은은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앉아있다. 감정의 모든 골목에 가을 보리밭 이 풍성했고, 삶이란 이다지도 행복한 것이로구나 라며 깨치던 참이었다. 평온이 넘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온것이라 생 각했다. 그렇게 약수동 어귀 어느 집에 들어선 후, 나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br>\n<br>\n그날의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겼다. 아니 짐작건대 한국, 미국의 개념도 없고 그저 외지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여 이곳에서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익히는 상황도, 그리고 비스무레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과 통성명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탐탁지 아니했다. 그들이 싫었기보담은, 고향에 돌아가는 중한 일은 뒷전인 채, 이곳에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의 심청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br>\n<br>\n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뛰놀던 잔디 언덕의 청연한 푸르름이 그리웠다. 밤마다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손끝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가 보고 싶었고, 해지면 어둠을 울리던 테니스공 소리가 듣고 싶었다. 가을이면 불이 난 산자락을 타고 굽이 흐르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는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뜻한 성탄 인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저 기억의 모든 혈관에 당연하게 자리하던 사소한 냄새와 촉각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6살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가져온 나의 기록과 흔적들을 매일같이 살펴보며 곱씹는 것이었다. 당연했던 순간들은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열거 되었고, 어제의 익숙했던 사물과 책은 하루가 다르게 낯선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작은 손아귀에서 흘러 사라지는 모래 줄기를 다시 주워 담듯, 기억 속에 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도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몇 해는 눈을 감은 채 지나갔다.<br>\n<br>\n반복하는 회상, 그리고 변화<br>\n어제의 일을 재확인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다. 주체할 수 없음이 자못 분명했다. 돌아가 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완성하는 조각이라면, 짐짓 태연한 얼굴로 들추는 버지니아의 기록 한 장 한 장은 고통의 날 선 조각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통각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편은 부수적인 해를 보기 마련이다.<br>\n<br>\n망실하는 것들이 생겼다.<br>\n기억의 실재는 나에게서 뒷걸음 치기 시작했고, 아득해지는 이를 붙잡으려 기록에 차츰 의지하게 되었다. 시나브로 기억은 기록으로 덮여 쓰였다. 근육은 죽고, 의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억이 달아나는 와중에 스스로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록으로 남은 것들이 나의 기억과 완전히 다름이라는 것은 아니나, 온전한 내 눈으로 바라본 그날은 아니었다.<br>\n<br>\n어긋나는 것들이 생겼다.<br>\n다섯 번째 생일 케익을 바라보는 나를 저 스스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숲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닳도록 읽어 외워버린 미국에서 가져온 국립공원 책자였다. 기록은 기억과 포개져 서로 스며들었다. 어긋난 지점들은 마치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사람의 손을 떠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땅의 동식물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기억과 기록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분명 원시림의 그것이었다.<br>\n<br>\n물음을 이어가는 작업<br>\n어린 날의 수고로움은 어느 틈엔가 잊혀지고, 기억을 수복하기 위한 나의 전투는 수많은 질문과 함께 바다 저 아래로 침몰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지리한 일상에서 때로 반복되는 의수의 기능 장애는 불능—그것이 아닌 혈관이 기억하는 지난날 나의 몸짓이자 야성의 부름이었다. 궁금했다. 그날의 일도 궁금했고, 기억의 행방도 궁금했다. 살아 숨 쉬던 그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질문들은 연달아 부표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겪은 일은 다 무어며, 수도 없이 거푸하는 회상과 기록 읽기는 무얼 남겼을까. 그리고 끝내 마주한, 허나 미처 발 들이지 못한 그 원시림은 다 무엇 이었을 까.<br>\n<br>\n장황스럽고 심히 사사로운 경험, 기억에 대한 잇따른 물음은 작업의 발단이자 거름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당최 무엇이 며, 기록은 또 무엇이기에 기억을 흔들어 놓는지, 그 둘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아직 풀지 않은 지난날의 숙제이자 미지로 남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의수 아래로 흐르는 혈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봄날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던 6살 아이의 행각을 답습해야했다.<br>\n<br>\ni)\t기억/포획<br>\n과거를 둘러싼 이미지를 기억해 내어 공간을 채우는 것, 수 개월간 특정 기록을 반복하고 이를 식품 용기에 보존하는 것. 버지니아에서 목격했을 법한 뉴스 헤드라인을 가공하여 스크린에 투사하고, 기억의 생존을 기리며 조리법을 반복적으로 지면에 필사하는 등의 행위는 무의식 역사에 깃든 유물들을 꺼내어 과거 행적을 답습하는 몸짓이었고, 지난날의 복권을 꾀하여 회상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기억 행위는 정신적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육체적이었고, 신체적 부 담을 수반하였다.<br>\n<br>\nii)\t기록/균열<br>\n기록, 그중에서도 사진과 영상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으며 정확하다. 기억이 장차 기록에 의지하게 됨은 이런 성질에 기인 하며 나는 양자가 덩그러니 놓인 혼성지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하여 기록의 경계면에 균열을 내어 둘의 교류를 가속하면 지난날 목격한 혼성지대—원시림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예리한 정물 사진을 19세기 방식으로 현상하고 나아가 전체 과정에 동양화 미디엄을 개입시키는 것은 기법과 물성의 충돌 을 야기하였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계 기록 방식의 옹벽을 유약한 점막으로 바꾸고 여기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견고하 고 단단해 보이는 객관성을 흐리고 무너뜨리는 시도는 확정적 이미지를 약화하여 여기에 기억들이 장마철 불어난 강물 처럼 무수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박리 된 표면은 원본 이미지의 상실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동시에 기억을 육화하는 나의 신체적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br>\n<br>\niii)\t재구성/낯설기.<br>\n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향한 기억 답습, 그러니까 지난 날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행위는 발췌와 재편성의 끊임없는 반복이었고, 그렇게 인양된 기억을 열거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은 다분히 편집적이었다. 재편성된 기억은 기록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생산되어 호출된, 나에게는 사뭇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비가시적인 중력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기존 기록물을 모아 질서를 재편하는 시도는 기억 생태계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도상을, 그리고 이와 관계를 맺는 기록들— 평론, 리플렛, 도록, 카탈로그 등—을 수집하였고, 이들 일부를 발췌,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보려 했다. 이는 일종의 편집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했고, 표면에 드러난 기억과 기록의 태도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이었다. 원본으로부터 탈거 된 일부는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듯 주변부의 도상이나 기호와 보이지 않는 결속을 맺기 시작했고,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은 분명 원본 도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와는 다른 성질의 무엇이었고 새로운 존재였다.<br>\n<br>\n다시 기억과 기록<br>\n기록과 기억은 각자의 숙명이 있다. 어떤 것은 견고한 갑옷의 삶을 살고, 그리고 다른 것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회상하는 나는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앞서 말한 기록과 기억의 혼성지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기보다는 각자 영역에 대한 재확인과 숙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행위로부터의 낯섦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기억과 기록 간의 관계성 탐구를 통해 인식된 감각과 물리적 정보가 서로를 포섭하여 자생할 수 있는 터를 건설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혼성지대를 살펴보는 행위는 정신적인 사유에 신체적 행위를 편입시킨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둘의 유기적 혼합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artist=>{:title=>"안종우", :description=>"[학력]<br>\n2022 석사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br>\n2011 학사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br>\n<br>\n[개인전]<br>\n2023\t12월 7일 오후 5시, Label Gallery, 서울<br>\n2023\t달 아래 꽃 하나, 갤러리아 백화점 East, 서울<br>\n2022\t구보씨의 일일 a Day in the Life of Mr.Gubo, 시각미술연구소 필승사, 서울<br>\n2022\tAttention, 갤러리 What Artists Do, 서울<br>\n2015\t감각의 릴레이 Sensory relay, 갤러리 KARAS, 서울<br>\n2015\t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3\t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br>\n[그룹전]<br>\n2023\tImagine of Music, BGA Gallery, 서울<br>\n2023\tRandom Rolling: Green Kisses White, Alternate Archive RASA, 서울<br>\n2023\tAesthetica Art Prize, York Art Gallery, 요크<br>\n2022\tBerlin Photo Week, Arena Berlin, 베를린<br>\n2022\t중앙회화대전, 한국미술관, 서울<br>\n2022\tSearching all sources,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서울<br>\n2018\tHao, 공간 행화탕, 서울<br>\n2015\tNeo Pop, 갤러리 Mei, 서울<br>\n2015\tAsyaaf 2015, 문화역 서울(구 서울역), 서울<br>\n2014\tOn the groun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4\tYoung artists,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나주<br>\n2014\tYou’ve got a message,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고양<br>\n<br>\n[수상]<br>\n2023\tAesthetica Art Prize / 선정작가, 영국<br>\n2022\tBBA Photography Prize, Berlin Photo Week/ 선정작가, 독일<br>\n2022\t중앙회화대전 / 입선, 대한민국<br>\n2022\tArt Olympia / 선정작가, 일본<br>\n2015\tASYAAF 2015 / 선정작가, 대한민국<br>\n2013\t신진작가 공모 선정작가 /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n"}}
http://geonhi.com/korean/48174-2/
푸른꽃 Blue flower 23-VII-12 2023, 장지에 시아노타입 Cyanotype on korea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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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우
푸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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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이다지도 행복한 것이로구나 라며 깨치던 참이었다. 평온이 넘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온것이라 생 각했다. 그렇게 약수동 어귀 어느 집에 들어선 후, 나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br>\n<br>\n그날의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겼다. 아니 짐작건대 한국, 미국의 개념도 없고 그저 외지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여 이곳에서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익히는 상황도, 그리고 비스무레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과 통성명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탐탁지 아니했다. 그들이 싫었기보담은, 고향에 돌아가는 중한 일은 뒷전인 채, 이곳에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의 심청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br>\n<br>\n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뛰놀던 잔디 언덕의 청연한 푸르름이 그리웠다. 밤마다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손끝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가 보고 싶었고, 해지면 어둠을 울리던 테니스공 소리가 듣고 싶었다. 가을이면 불이 난 산자락을 타고 굽이 흐르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는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뜻한 성탄 인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저 기억의 모든 혈관에 당연하게 자리하던 사소한 냄새와 촉각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6살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가져온 나의 기록과 흔적들을 매일같이 살펴보며 곱씹는 것이었다. 당연했던 순간들은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열거 되었고, 어제의 익숙했던 사물과 책은 하루가 다르게 낯선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작은 손아귀에서 흘러 사라지는 모래 줄기를 다시 주워 담듯, 기억 속에 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도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몇 해는 눈을 감은 채 지나갔다.<br>\n<br>\n반복하는 회상, 그리고 변화<br>\n어제의 일을 재확인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다. 주체할 수 없음이 자못 분명했다. 돌아가 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완성하는 조각이라면, 짐짓 태연한 얼굴로 들추는 버지니아의 기록 한 장 한 장은 고통의 날 선 조각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통각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편은 부수적인 해를 보기 마련이다.<br>\n<br>\n망실하는 것들이 생겼다.<br>\n기억의 실재는 나에게서 뒷걸음 치기 시작했고, 아득해지는 이를 붙잡으려 기록에 차츰 의지하게 되었다. 시나브로 기억은 기록으로 덮여 쓰였다. 근육은 죽고, 의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억이 달아나는 와중에 스스로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록으로 남은 것들이 나의 기억과 완전히 다름이라는 것은 아니나, 온전한 내 눈으로 바라본 그날은 아니었다.<br>\n<br>\n어긋나는 것들이 생겼다.<br>\n다섯 번째 생일 케익을 바라보는 나를 저 스스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숲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닳도록 읽어 외워버린 미국에서 가져온 국립공원 책자였다. 기록은 기억과 포개져 서로 스며들었다. 어긋난 지점들은 마치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사람의 손을 떠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땅의 동식물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기억과 기록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분명 원시림의 그것이었다.<br>\n<br>\n물음을 이어가는 작업<br>\n어린 날의 수고로움은 어느 틈엔가 잊혀지고, 기억을 수복하기 위한 나의 전투는 수많은 질문과 함께 바다 저 아래로 침몰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지리한 일상에서 때로 반복되는 의수의 기능 장애는 불능—그것이 아닌 혈관이 기억하는 지난날 나의 몸짓이자 야성의 부름이었다. 궁금했다. 그날의 일도 궁금했고, 기억의 행방도 궁금했다. 살아 숨 쉬던 그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질문들은 연달아 부표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겪은 일은 다 무어며, 수도 없이 거푸하는 회상과 기록 읽기는 무얼 남겼을까. 그리고 끝내 마주한, 허나 미처 발 들이지 못한 그 원시림은 다 무엇 이었을 까.<br>\n<br>\n장황스럽고 심히 사사로운 경험, 기억에 대한 잇따른 물음은 작업의 발단이자 거름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당최 무엇이 며, 기록은 또 무엇이기에 기억을 흔들어 놓는지, 그 둘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아직 풀지 않은 지난날의 숙제이자 미지로 남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의수 아래로 흐르는 혈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봄날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던 6살 아이의 행각을 답습해야했다.<br>\n<br>\ni)\t기억/포획<br>\n과거를 둘러싼 이미지를 기억해 내어 공간을 채우는 것, 수 개월간 특정 기록을 반복하고 이를 식품 용기에 보존하는 것. 버지니아에서 목격했을 법한 뉴스 헤드라인을 가공하여 스크린에 투사하고, 기억의 생존을 기리며 조리법을 반복적으로 지면에 필사하는 등의 행위는 무의식 역사에 깃든 유물들을 꺼내어 과거 행적을 답습하는 몸짓이었고, 지난날의 복권을 꾀하여 회상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기억 행위는 정신적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육체적이었고, 신체적 부 담을 수반하였다.<br>\n<br>\nii)\t기록/균열<br>\n기록, 그중에서도 사진과 영상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으며 정확하다. 기억이 장차 기록에 의지하게 됨은 이런 성질에 기인 하며 나는 양자가 덩그러니 놓인 혼성지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하여 기록의 경계면에 균열을 내어 둘의 교류를 가속하면 지난날 목격한 혼성지대—원시림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예리한 정물 사진을 19세기 방식으로 현상하고 나아가 전체 과정에 동양화 미디엄을 개입시키는 것은 기법과 물성의 충돌 을 야기하였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계 기록 방식의 옹벽을 유약한 점막으로 바꾸고 여기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견고하 고 단단해 보이는 객관성을 흐리고 무너뜨리는 시도는 확정적 이미지를 약화하여 여기에 기억들이 장마철 불어난 강물 처럼 무수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박리 된 표면은 원본 이미지의 상실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동시에 기억을 육화하는 나의 신체적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br>\n<br>\niii)\t재구성/낯설기.<br>\n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향한 기억 답습, 그러니까 지난 날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행위는 발췌와 재편성의 끊임없는 반복이었고, 그렇게 인양된 기억을 열거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은 다분히 편집적이었다. 재편성된 기억은 기록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생산되어 호출된, 나에게는 사뭇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비가시적인 중력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기존 기록물을 모아 질서를 재편하는 시도는 기억 생태계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도상을, 그리고 이와 관계를 맺는 기록들— 평론, 리플렛, 도록, 카탈로그 등—을 수집하였고, 이들 일부를 발췌,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보려 했다. 이는 일종의 편집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했고, 표면에 드러난 기억과 기록의 태도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이었다. 원본으로부터 탈거 된 일부는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듯 주변부의 도상이나 기호와 보이지 않는 결속을 맺기 시작했고,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은 분명 원본 도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와는 다른 성질의 무엇이었고 새로운 존재였다.<br>\n<br>\n다시 기억과 기록<br>\n기록과 기억은 각자의 숙명이 있다. 어떤 것은 견고한 갑옷의 삶을 살고, 그리고 다른 것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회상하는 나는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앞서 말한 기록과 기억의 혼성지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기보다는 각자 영역에 대한 재확인과 숙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행위로부터의 낯섦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기억과 기록 간의 관계성 탐구를 통해 인식된 감각과 물리적 정보가 서로를 포섭하여 자생할 수 있는 터를 건설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혼성지대를 살펴보는 행위는 정신적인 사유에 신체적 행위를 편입시킨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둘의 유기적 혼합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artist=>{:title=>"안종우", :description=>"[학력]<br>\n2022 석사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br>\n2011 학사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br>\n<br>\n[개인전]<br>\n2023\t12월 7일 오후 5시, Label Gallery, 서울<br>\n2023\t달 아래 꽃 하나, 갤러리아 백화점 East, 서울<br>\n2022\t구보씨의 일일 a Day in the Life of Mr.Gubo, 시각미술연구소 필승사, 서울<br>\n2022\tAttention, 갤러리 What Artists Do, 서울<br>\n2015\t감각의 릴레이 Sensory relay, 갤러리 KARAS, 서울<br>\n2015\t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3\t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br>\n[그룹전]<br>\n2023\tImagine of Music, BGA Gallery, 서울<br>\n2023\tRandom Rolling: Green Kisses White, Alternate Archive RASA, 서울<br>\n2023\tAesthetica Art Prize, York Art Gallery, 요크<br>\n2022\tBerlin Photo Week, Arena Berlin, 베를린<br>\n2022\t중앙회화대전, 한국미술관, 서울<br>\n2022\tSearching all sources,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서울<br>\n2018\tHao, 공간 행화탕, 서울<br>\n2015\tNeo Pop, 갤러리 Mei, 서울<br>\n2015\tAsyaaf 2015, 문화역 서울(구 서울역), 서울<br>\n2014\tOn the groun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4\tYoung artists,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나주<br>\n2014\tYou’ve got a message,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고양<br>\n<br>\n[수상]<br>\n2023\tAesthetica Art Prize / 선정작가, 영국<br>\n2022\tBBA Photography Prize, Berlin Photo Week/ 선정작가, 독일<br>\n2022\t중앙회화대전 / 입선, 대한민국<br>\n2022\tArt Olympia / 선정작가, 일본<br>\n2015\tASYAAF 2015 / 선정작가, 대한민국<br>\n2013\t신진작가 공모 선정작가 /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n"}}
http://geonhi.com/korean/안종우-복수의-다회적-회상-2023/
11.Raymonda 2023, 장지에 시아노타입 후 시퀀스화 Cyanotype on korean paper & Sequenced 105 x 38 cm, 3sec loop single channel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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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우
복수의 다회적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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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hammad Ali<br>\n<a href=\"https://youtu.be/5SjhhaXNBV8\">[https://youtu.be/5SjhhaXNBV8]</a><br>\n<br>\nartist statement<br>\n기억, 그리고 원시림<br>\n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br>\n<br>\n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던 당시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오후의 살굿빛 햇살이 들어오던 공항 풍경은 졸린 기억<br>\n으로 남아있고, 짐가방과 트롤리의 바퀴 소리는 은은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앉아있다. 감정의 모든 골목에 가을 보리밭 이 풍성했고, 삶이란 이다지도 행복한 것이로구나 라며 깨치던 참이었다. 평온이 넘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온것이라 생 각했다. 그렇게 약수동 어귀 어느 집에 들어선 후, 나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br>\n<br>\n그날의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겼다. 아니 짐작건대 한국, 미국의 개념도 없고 그저 외지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여 이곳에서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익히는 상황도, 그리고 비스무레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과 통성명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탐탁지 아니했다. 그들이 싫었기보담은, 고향에 돌아가는 중한 일은 뒷전인 채, 이곳에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의 심청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br>\n<br>\n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뛰놀던 잔디 언덕의 청연한 푸르름이 그리웠다. 밤마다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손끝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가 보고 싶었고, 해지면 어둠을 울리던 테니스공 소리가 듣고 싶었다. 가을이면 불이 난 산자락을 타고 굽이 흐르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는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뜻한 성탄 인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저 기억의 모든 혈관에 당연하게 자리하던 사소한 냄새와 촉각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6살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가져온 나의 기록과 흔적들을 매일같이 살펴보며 곱씹는 것이었다. 당연했던 순간들은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열거 되었고, 어제의 익숙했던 사물과 책은 하루가 다르게 낯선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작은 손아귀에서 흘러 사라지는 모래 줄기를 다시 주워 담듯, 기억 속에 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도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몇 해는 눈을 감은 채 지나갔다.<br>\n<br>\n반복하는 회상, 그리고 변화<br>\n어제의 일을 재확인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다. 주체할 수 없음이 자못 분명했다. 돌아가 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완성하는 조각이라면, 짐짓 태연한 얼굴로 들추는 버지니아의 기록 한 장 한 장은 고통의 날 선 조각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통각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편은 부수적인 해를 보기 마련이다.<br>\n<br>\n망실하는 것들이 생겼다.<br>\n기억의 실재는 나에게서 뒷걸음 치기 시작했고, 아득해지는 이를 붙잡으려 기록에 차츰 의지하게 되었다. 시나브로 기억은 기록으로 덮여 쓰였다. 근육은 죽고, 의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억이 달아나는 와중에 스스로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록으로 남은 것들이 나의 기억과 완전히 다름이라는 것은 아니나, 온전한 내 눈으로 바라본 그날은 아니었다.<br>\n<br>\n어긋나는 것들이 생겼다.<br>\n다섯 번째 생일 케익을 바라보는 나를 저 스스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숲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닳도록 읽어 외워버린 미국에서 가져온 국립공원 책자였다. 기록은 기억과 포개져 서로 스며들었다. 어긋난 지점들은 마치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사람의 손을 떠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땅의 동식물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기억과 기록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분명 원시림의 그것이었다.<br>\n<br>\n물음을 이어가는 작업<br>\n어린 날의 수고로움은 어느 틈엔가 잊혀지고, 기억을 수복하기 위한 나의 전투는 수많은 질문과 함께 바다 저 아래로 침몰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지리한 일상에서 때로 반복되는 의수의 기능 장애는 불능—그것이 아닌 혈관이 기억하는 지난날 나의 몸짓이자 야성의 부름이었다. 궁금했다. 그날의 일도 궁금했고, 기억의 행방도 궁금했다. 살아 숨 쉬던 그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질문들은 연달아 부표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겪은 일은 다 무어며, 수도 없이 거푸하는 회상과 기록 읽기는 무얼 남겼을까. 그리고 끝내 마주한, 허나 미처 발 들이지 못한 그 원시림은 다 무엇 이었을 까.<br>\n<br>\n장황스럽고 심히 사사로운 경험, 기억에 대한 잇따른 물음은 작업의 발단이자 거름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당최 무엇이 며, 기록은 또 무엇이기에 기억을 흔들어 놓는지, 그 둘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아직 풀지 않은 지난날의 숙제이자 미지로 남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의수 아래로 흐르는 혈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봄날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던 6살 아이의 행각을 답습해야했다.<br>\n<br>\ni)\t기억/포획<br>\n과거를 둘러싼 이미지를 기억해 내어 공간을 채우는 것, 수 개월간 특정 기록을 반복하고 이를 식품 용기에 보존하는 것. 버지니아에서 목격했을 법한 뉴스 헤드라인을 가공하여 스크린에 투사하고, 기억의 생존을 기리며 조리법을 반복적으로 지면에 필사하는 등의 행위는 무의식 역사에 깃든 유물들을 꺼내어 과거 행적을 답습하는 몸짓이었고, 지난날의 복권을 꾀하여 회상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기억 행위는 정신적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육체적이었고, 신체적 부 담을 수반하였다.<br>\n<br>\nii)\t기록/균열<br>\n기록, 그중에서도 사진과 영상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으며 정확하다. 기억이 장차 기록에 의지하게 됨은 이런 성질에 기인 하며 나는 양자가 덩그러니 놓인 혼성지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하여 기록의 경계면에 균열을 내어 둘의 교류를 가속하면 지난날 목격한 혼성지대—원시림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예리한 정물 사진을 19세기 방식으로 현상하고 나아가 전체 과정에 동양화 미디엄을 개입시키는 것은 기법과 물성의 충돌 을 야기하였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계 기록 방식의 옹벽을 유약한 점막으로 바꾸고 여기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견고하 고 단단해 보이는 객관성을 흐리고 무너뜨리는 시도는 확정적 이미지를 약화하여 여기에 기억들이 장마철 불어난 강물 처럼 무수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박리 된 표면은 원본 이미지의 상실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동시에 기억을 육화하는 나의 신체적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br>\n<br>\niii)\t재구성/낯설기.<br>\n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향한 기억 답습, 그러니까 지난 날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행위는 발췌와 재편성의 끊임없는 반복이었고, 그렇게 인양된 기억을 열거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은 다분히 편집적이었다. 재편성된 기억은 기록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생산되어 호출된, 나에게는 사뭇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비가시적인 중력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기존 기록물을 모아 질서를 재편하는 시도는 기억 생태계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도상을, 그리고 이와 관계를 맺는 기록들— 평론, 리플렛, 도록, 카탈로그 등—을 수집하였고, 이들 일부를 발췌,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보려 했다. 이는 일종의 편집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했고, 표면에 드러난 기억과 기록의 태도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이었다. 원본으로부터 탈거 된 일부는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듯 주변부의 도상이나 기호와 보이지 않는 결속을 맺기 시작했고,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은 분명 원본 도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와는 다른 성질의 무엇이었고 새로운 존재였다.<br>\n<br>\n다시 기억과 기록<br>\n기록과 기억은 각자의 숙명이 있다. 어떤 것은 견고한 갑옷의 삶을 살고, 그리고 다른 것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회상하는 나는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앞서 말한 기록과 기억의 혼성지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기보다는 각자 영역에 대한 재확인과 숙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행위로부터의 낯섦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기억과 기록 간의 관계성 탐구를 통해 인식된 감각과 물리적 정보가 서로를 포섭하여 자생할 수 있는 터를 건설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혼성지대를 살펴보는 행위는 정신적인 사유에 신체적 행위를 편입시킨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둘의 유기적 혼합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artist=>{:title=>"안종우", :description=>"[학력]<br>\n2022 석사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br>\n2011 학사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br>\n<br>\n[개인전]<br>\n2023\t12월 7일 오후 5시, Label Gallery, 서울<br>\n2023\t달 아래 꽃 하나, 갤러리아 백화점 East, 서울<br>\n2022\t구보씨의 일일 a Day in the Life of Mr.Gubo, 시각미술연구소 필승사, 서울<br>\n2022\tAttention, 갤러리 What Artists Do, 서울<br>\n2015\t감각의 릴레이 Sensory relay, 갤러리 KARAS, 서울<br>\n2015\t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3\t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br>\n[그룹전]<br>\n2023\tImagine of Music, BGA Gallery, 서울<br>\n2023\tRandom Rolling: Green Kisses White, Alternate Archive RASA, 서울<br>\n2023\tAesthetica Art Prize, York Art Gallery, 요크<br>\n2022\tBerlin Photo Week, Arena Berlin, 베를린<br>\n2022\t중앙회화대전, 한국미술관, 서울<br>\n2022\tSearching all sources,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서울<br>\n2018\tHao, 공간 행화탕, 서울<br>\n2015\tNeo Pop, 갤러리 Mei, 서울<br>\n2015\tAsyaaf 2015, 문화역 서울(구 서울역), 서울<br>\n2014\tOn the groun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4\tYoung artists,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나주<br>\n2014\tYou’ve got a message,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고양<br>\n<br>\n[수상]<br>\n2023\tAesthetica Art Prize / 선정작가, 영국<br>\n2022\tBBA Photography Prize, Berlin Photo Week/ 선정작가, 독일<br>\n2022\t중앙회화대전 / 입선, 대한민국<br>\n2022\tArt Olympia / 선정작가, 일본<br>\n2015\tASYAAF 2015 / 선정작가, 대한민국<br>\n2013\t신진작가 공모 선정작가 /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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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ario olives (23-IX-12)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80 x 240cm(multi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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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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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y fong chili garlic seasoning (23-IX-18)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80 x 120cm(multi frame)", "4. Barilla olive (23-IX-18)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80 x 120cm(multi frame)", "5. Barilla arrabbiata (23-IX-18)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80 x 120cm(multi frame)", "6. Barilla spaghetti n.5 (23-IX-6)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80 x 120cm(multi frame)", "7. Still life with apples (23-VIII-15) 2023, 장지에 시아노타입 Cyanotype on korean paper 120 x 270cm(multi frame)", "8. Still life with corn flakes (23-VIII-12) 2023, 장지에 시아노타입 Cyanotype on korean paper 120 x 270cm(multi frame)", "9. Kikkoman soy sauce (23-IX-10)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20 x 90cm", "10. Huy fong sriracha sauce (23-IX-10) 2023,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20 x 90cm"], :gallery=>{:title=>"정물, 2023", :description=>"artist statement<br>\n기억, 그리고 원시림<br>\n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br>\n<br>\n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던 당시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오후의 살굿빛 햇살이 들어오던 공항 풍경은 졸린 기억<br>\n으로 남아있고, 짐가방과 트롤리의 바퀴 소리는 은은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앉아있다. 감정의 모든 골목에 가을 보리밭 이 풍성했고, 삶이란 이다지도 행복한 것이로구나 라며 깨치던 참이었다. 평온이 넘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온것이라 생 각했다. 그렇게 약수동 어귀 어느 집에 들어선 후, 나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br>\n<br>\n그날의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겼다. 아니 짐작건대 한국, 미국의 개념도 없고 그저 외지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여 이곳에서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익히는 상황도, 그리고 비스무레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과 통성명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탐탁지 아니했다. 그들이 싫었기보담은, 고향에 돌아가는 중한 일은 뒷전인 채, 이곳에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의 심청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br>\n<br>\n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뛰놀던 잔디 언덕의 청연한 푸르름이 그리웠다. 밤마다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손끝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가 보고 싶었고, 해지면 어둠을 울리던 테니스공 소리가 듣고 싶었다. 가을이면 불이 난 산자락을 타고 굽이 흐르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는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뜻한 성탄 인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저 기억의 모든 혈관에 당연하게 자리하던 사소한 냄새와 촉각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6살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가져온 나의 기록과 흔적들을 매일같이 살펴보며 곱씹는 것이었다. 당연했던 순간들은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열거 되었고, 어제의 익숙했던 사물과 책은 하루가 다르게 낯선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작은 손아귀에서 흘러 사라지는 모래 줄기를 다시 주워 담듯, 기억 속에 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도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몇 해는 눈을 감은 채 지나갔다.<br>\n<br>\n반복하는 회상, 그리고 변화<br>\n어제의 일을 재확인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다. 주체할 수 없음이 자못 분명했다. 돌아가 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완성하는 조각이라면, 짐짓 태연한 얼굴로 들추는 버지니아의 기록 한 장 한 장은 고통의 날 선 조각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통각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편은 부수적인 해를 보기 마련이다.<br>\n<br>\n망실하는 것들이 생겼다.<br>\n기억의 실재는 나에게서 뒷걸음 치기 시작했고, 아득해지는 이를 붙잡으려 기록에 차츰 의지하게 되었다. 시나브로 기억은 기록으로 덮여 쓰였다. 근육은 죽고, 의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억이 달아나는 와중에 스스로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록으로 남은 것들이 나의 기억과 완전히 다름이라는 것은 아니나, 온전한 내 눈으로 바라본 그날은 아니었다.<br>\n<br>\n어긋나는 것들이 생겼다.<br>\n다섯 번째 생일 케익을 바라보는 나를 저 스스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숲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닳도록 읽어 외워버린 미국에서 가져온 국립공원 책자였다. 기록은 기억과 포개져 서로 스며들었다. 어긋난 지점들은 마치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사람의 손을 떠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땅의 동식물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기억과 기록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분명 원시림의 그것이었다.<br>\n<br>\n물음을 이어가는 작업<br>\n어린 날의 수고로움은 어느 틈엔가 잊혀지고, 기억을 수복하기 위한 나의 전투는 수많은 질문과 함께 바다 저 아래로 침몰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지리한 일상에서 때로 반복되는 의수의 기능 장애는 불능—그것이 아닌 혈관이 기억하는 지난날 나의 몸짓이자 야성의 부름이었다. 궁금했다. 그날의 일도 궁금했고, 기억의 행방도 궁금했다. 살아 숨 쉬던 그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질문들은 연달아 부표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겪은 일은 다 무어며, 수도 없이 거푸하는 회상과 기록 읽기는 무얼 남겼을까. 그리고 끝내 마주한, 허나 미처 발 들이지 못한 그 원시림은 다 무엇 이었을 까.<br>\n<br>\n장황스럽고 심히 사사로운 경험, 기억에 대한 잇따른 물음은 작업의 발단이자 거름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당최 무엇이 며, 기록은 또 무엇이기에 기억을 흔들어 놓는지, 그 둘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아직 풀지 않은 지난날의 숙제이자 미지로 남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의수 아래로 흐르는 혈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봄날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던 6살 아이의 행각을 답습해야했다.<br>\n<br>\ni)\t기억/포획<br>\n과거를 둘러싼 이미지를 기억해 내어 공간을 채우는 것, 수 개월간 특정 기록을 반복하고 이를 식품 용기에 보존하는 것. 버지니아에서 목격했을 법한 뉴스 헤드라인을 가공하여 스크린에 투사하고, 기억의 생존을 기리며 조리법을 반복적으로 지면에 필사하는 등의 행위는 무의식 역사에 깃든 유물들을 꺼내어 과거 행적을 답습하는 몸짓이었고, 지난날의 복권을 꾀하여 회상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기억 행위는 정신적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육체적이었고, 신체적 부 담을 수반하였다.<br>\n<br>\nii)\t기록/균열<br>\n기록, 그중에서도 사진과 영상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으며 정확하다. 기억이 장차 기록에 의지하게 됨은 이런 성질에 기인 하며 나는 양자가 덩그러니 놓인 혼성지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하여 기록의 경계면에 균열을 내어 둘의 교류를 가속하면 지난날 목격한 혼성지대—원시림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예리한 정물 사진을 19세기 방식으로 현상하고 나아가 전체 과정에 동양화 미디엄을 개입시키는 것은 기법과 물성의 충돌 을 야기하였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계 기록 방식의 옹벽을 유약한 점막으로 바꾸고 여기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견고하 고 단단해 보이는 객관성을 흐리고 무너뜨리는 시도는 확정적 이미지를 약화하여 여기에 기억들이 장마철 불어난 강물 처럼 무수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박리 된 표면은 원본 이미지의 상실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동시에 기억을 육화하는 나의 신체적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br>\n<br>\niii)\t재구성/낯설기.<br>\n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향한 기억 답습, 그러니까 지난 날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행위는 발췌와 재편성의 끊임없는 반복이었고, 그렇게 인양된 기억을 열거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은 다분히 편집적이었다. 재편성된 기억은 기록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생산되어 호출된, 나에게는 사뭇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비가시적인 중력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기존 기록물을 모아 질서를 재편하는 시도는 기억 생태계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도상을, 그리고 이와 관계를 맺는 기록들— 평론, 리플렛, 도록, 카탈로그 등—을 수집하였고, 이들 일부를 발췌,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보려 했다. 이는 일종의 편집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했고, 표면에 드러난 기억과 기록의 태도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이었다. 원본으로부터 탈거 된 일부는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듯 주변부의 도상이나 기호와 보이지 않는 결속을 맺기 시작했고,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은 분명 원본 도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와는 다른 성질의 무엇이었고 새로운 존재였다.<br>\n<br>\n다시 기억과 기록<br>\n기록과 기억은 각자의 숙명이 있다. 어떤 것은 견고한 갑옷의 삶을 살고, 그리고 다른 것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회상하는 나는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앞서 말한 기록과 기억의 혼성지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기보다는 각자 영역에 대한 재확인과 숙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행위로부터의 낯섦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기억과 기록 간의 관계성 탐구를 통해 인식된 감각과 물리적 정보가 서로를 포섭하여 자생할 수 있는 터를 건설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혼성지대를 살펴보는 행위는 정신적인 사유에 신체적 행위를 편입시킨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둘의 유기적 혼합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n"}, :artist=>{:title=>"안종우", :description=>"[학력]<br>\n2022 석사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br>\n2011 학사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br>\n<br>\n[개인전]<br>\n2023\t12월 7일 오후 5시, Label Gallery, 서울<br>\n2023\t달 아래 꽃 하나, 갤러리아 백화점 East, 서울<br>\n2022\t구보씨의 일일 a Day in the Life of Mr.Gubo, 시각미술연구소 필승사, 서울<br>\n2022\tAttention, 갤러리 What Artists Do, 서울<br>\n2015\t감각의 릴레이 Sensory relay, 갤러리 KARAS, 서울<br>\n2015\t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3\t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br>\n[그룹전]<br>\n2023\tImagine of Music, BGA Gallery, 서울<br>\n2023\tRandom Rolling: Green Kisses White, Alternate Archive RASA, 서울<br>\n2023\tAesthetica Art Prize, York Art Gallery, 요크<br>\n2022\tBerlin Photo Week, Arena Berlin, 베를린<br>\n2022\t중앙회화대전, 한국미술관, 서울<br>\n2022\tSearching all sources,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서울<br>\n2018\tHao, 공간 행화탕, 서울<br>\n2015\tNeo Pop, 갤러리 Mei, 서울<br>\n2015\tAsyaaf 2015, 문화역 서울(구 서울역), 서울<br>\n2014\tOn the groun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4\tYoung artists,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나주<br>\n2014\tYou’ve got a message,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고양<br>\n<br>\n[수상]<br>\n2023\tAesthetica Art Prize / 선정작가, 영국<br>\n2022\tBBA Photography Prize, Berlin Photo Week/ 선정작가, 독일<br>\n2022\t중앙회화대전 / 입선, 대한민국<br>\n2022\tArt Olympia / 선정작가, 일본<br>\n2015\tASYAAF 2015 / 선정작가, 대한민국<br>\n2013\t신진작가 공모 선정작가 /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n"}}
http://geonhi.com/korean/안종우-초상-2022/
19. 윤원의 얼굴 (Yunwon) 2022, 장지에 분채 검프린트 Dry pigment gum bichromate on korean paper, 110 x 110cm
http://geonhi.com/korean/wp-content/uploads/2023/12/19.jpg
안종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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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 여행을 온것이라 생 각했다. 그렇게 약수동 어귀 어느 집에 들어선 후, 나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br>\n<br>\n그날의 나는 외모와 상관없이 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여겼다. 아니 짐작건대 한국, 미국의 개념도 없고 그저 외지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여 이곳에서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익히는 상황도, 그리고 비스무레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과 통성명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탐탁지 아니했다. 그들이 싫었기보담은, 고향에 돌아가는 중한 일은 뒷전인 채, 이곳에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의 심청은 계속 기울어져 갔다.<br>\n<br>\n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뛰놀던 잔디 언덕의 청연한 푸르름이 그리웠다. 밤마다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손끝에 아른거렸다. 아침이면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가 보고 싶었고, 해지면 어둠을 울리던 테니스공 소리가 듣고 싶었다. 가을이면 불이 난 산자락을 타고 굽이 흐르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는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뜻한 성탄 인사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저 기억의 모든 혈관에 당연하게 자리하던 사소한 냄새와 촉각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6살의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가져온 나의 기록과 흔적들을 매일같이 살펴보며 곱씹는 것이었다. 당연했던 순간들은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열거 되었고, 어제의 익숙했던 사물과 책은 하루가 다르게 낯선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작은 손아귀에서 흘러 사라지는 모래 줄기를 다시 주워 담듯, 기억 속에 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도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몇 해는 눈을 감은 채 지나갔다.<br>\n<br>\n반복하는 회상, 그리고 변화<br>\n어제의 일을 재확인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였다. 주체할 수 없음이 자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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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들이지 못한 그 원시림은 다 무엇 이었을 까.<br>\n<br>\n장황스럽고 심히 사사로운 경험, 기억에 대한 잇따른 물음은 작업의 발단이자 거름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당최 무엇이 며, 기록은 또 무엇이기에 기억을 흔들어 놓는지, 그 둘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아직 풀지 않은 지난날의 숙제이자 미지로 남은 땅이었다.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의수 아래로 흐르는 혈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봄날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던 6살 아이의 행각을 답습해야했다.<br>\n<br>\ni)\t기억/포획<br>\n과거를 둘러싼 이미지를 기억해 내어 공간을 채우는 것, 수 개월간 특정 기록을 반복하고 이를 식품 용기에 보존하는 것. 버지니아에서 목격했을 법한 뉴스 헤드라인을 가공하여 스크린에 투사하고, 기억의 생존을 기리며 조리법을 반복적으로 지면에 필사하는 등의 행위는 무의식 역사에 깃든 유물들을 꺼내어 과거 행적을 답습하는 몸짓이었고, 지난날의 복권을 꾀하여 회상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기억 행위는 정신적이기보다는 생각보다 육체적이었고, 신체적 부 담을 수반하였다.<br>\n<br>\nii)\t기록/균열<br>\n기록, 그중에서도 사진과 영상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으며 정확하다. 기억이 장차 기록에 의지하게 됨은 이런 성질에 기인 하며 나는 양자가 덩그러니 놓인 혼성지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하여 기록의 경계면에 균열을 내어 둘의 교류를 가속하면 지난날 목격한 혼성지대—원시림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예리한 정물 사진을 19세기 방식으로 현상하고 나아가 전체 과정에 동양화 미디엄을 개입시키는 것은 기법과 물성의 충돌 을 야기하였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계 기록 방식의 옹벽을 유약한 점막으로 바꾸고 여기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견고하 고 단단해 보이는 객관성을 흐리고 무너뜨리는 시도는 확정적 이미지를 약화하여 여기에 기억들이 장마철 불어난 강물 처럼 무수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박리 된 표면은 원본 이미지의 상실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동시에 기억을 육화하는 나의 신체적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br>\n<br>\niii)\t재구성/낯설기.<br>\n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향한 기억 답습, 그러니까 지난 날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행위는 발췌와 재편성의 끊임없는 반복이었고, 그렇게 인양된 기억을 열거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은 다분히 편집적이었다. 재편성된 기억은 기록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생산되어 호출된, 나에게는 사뭇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때론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비가시적인 중력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기존 기록물을 모아 질서를 재편하는 시도는 기억 생태계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 보였다. 나는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도상을, 그리고 이와 관계를 맺는 기록들— 평론, 리플렛, 도록, 카탈로그 등—을 수집하였고, 이들 일부를 발췌,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해 보려 했다. 이는 일종의 편집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했고, 표면에 드러난 기억과 기록의 태도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이었다. 원본으로부터 탈거 된 일부는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듯 주변부의 도상이나 기호와 보이지 않는 결속을 맺기 시작했고,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은 분명 원본 도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와는 다른 성질의 무엇이었고 새로운 존재였다.<br>\n<br>\n다시 기억과 기록<br>\n기록과 기억은 각자의 숙명이 있다. 어떤 것은 견고한 갑옷의 삶을 살고, 그리고 다른 것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서울에서 버지니아를 회상하는 나는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앞서 말한 기록과 기억의 혼성지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기보다는 각자 영역에 대한 재확인과 숙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행위로부터의 낯섦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기억과 기록 간의 관계성 탐구를 통해 인식된 감각과 물리적 정보가 서로를 포섭하여 자생할 수 있는 터를 건설한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혼성지대를 살펴보는 행위는 정신적인 사유에 신체적 행위를 편입시킨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둘의 유기적 혼합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n"}, :artist=>{:title=>"안종우", :description=>"[학력]<br>\n2022 석사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br>\n2011 학사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br>\n<br>\n[개인전]<br>\n2023\t12월 7일 오후 5시, Label Gallery, 서울<br>\n2023\t달 아래 꽃 하나, 갤러리아 백화점 East, 서울<br>\n2022\t구보씨의 일일 a Day in the Life of Mr.Gubo, 시각미술연구소 필승사, 서울<br>\n2022\tAttention, 갤러리 What Artists Do, 서울<br>\n2015\t감각의 릴레이 Sensory relay, 갤러리 KARAS, 서울<br>\n2015\t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3\t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br>\n[그룹전]<br>\n2023\tImagine of Music, BGA Gallery, 서울<br>\n2023\tRandom Rolling: Green Kisses White, Alternate Archive RASA, 서울<br>\n2023\tAesthetica Art Prize, York Art Gallery, 요크<br>\n2022\tBerlin Photo Week, Arena Berlin, 베를린<br>\n2022\t중앙회화대전, 한국미술관, 서울<br>\n2022\tSearching all sources,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서울<br>\n2018\tHao, 공간 행화탕, 서울<br>\n2015\tNeo Pop, 갤러리 Mei, 서울<br>\n2015\tAsyaaf 2015, 문화역 서울(구 서울역), 서울<br>\n2014\tOn the ground,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br>\n2014\tYoung artists,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나주<br>\n2014\tYou’ve got a message,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고양<br>\n<br>\n[수상]<br>\n2023\tAesthetica Art Prize / 선정작가, 영국<br>\n2022\tBBA Photography Prize, Berlin Photo Week/ 선정작가, 독일<br>\n2022\t중앙회화대전 / 입선, 대한민국<br>\n2022\tArt Olympia / 선정작가, 일본<br>\n2015\tASYAAF 2015 / 선정작가, 대한민국<br>\n2013\t신진작가 공모 선정작가 / 갤러리 Palais de Seoul, 서울\n"}}